자퇴 고민하던 학생, 미술전시회까지 열게 된 사연
자퇴 고민하던 학생, 미술전시회까지 열게 된 사연
  • 박종은 기자
  • 승인 2019.04.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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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한울고 스승과 제자, 함께 미술작품 전시회 열다
▲ 자퇴 고민하던 학생, 미술전시회까지 열게 된 사연

[곡성/전라도뉴스] 지난해 5월 곡성 한울고등학교 미술실. 한 학생이 목공실에서 주워 온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본 미술교사는 학생의 소질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학생에게 “제대로 그림 한번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학생은 이때까지 한 번도 미술학원에 다니거나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후 교사는 학생에게 물감과 붓을 사주고, 기본적인 미술 기법을 알려주며 학생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기숙사 생활도 힘들고, 학교에 다니기도 싫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 학생은 지난해 7월 자퇴를 결심했다. 한울고는 공립대안학교로, 일반 학교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지만 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이 싫었다.

교사는 학생의 재능과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학생의 재능과 끼를 살려주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할 전환점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 상담과 설득이 이어졌고, 학생의 재능을 일깨워주며 함께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그나마 학교생활에서 유일한 위안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알 수 없는 희열과 기쁨을 느끼기도 했죠.” 6개월여의 작업 기간을 거쳐 오는 11일부터 19일 무안군 삼향읍 전라남도교육청 1층 갤러리 이음에서 ‘스승과 제자의 동행-열 여덟 그리고 쉰셋 展’이라는 주제로 학생과 교사의 이름을 내 건 미술작품 전시회가 개최된다.

보통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위한 문제풀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밤늦도록 미술실에 앉아 조용히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해 온 학생의 일상이 담긴 특별한 전시회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곡성 한울고 김환유 학생과 윤석우 미술교사이다.

김환유 학생은 이번 전시회에 지난 6개월 동안 공을 들인 회화작품 25점을 내놨다.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사춘기 소녀가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학교라는 굴레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 관계 속에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생각과 느낌들이 그대로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윤 교사는 김환유 학생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보통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은 잘 그리려 하고 경직되는 단점이 있는데, 환유는 표현이 거침없이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을 그림 속에서 솔직하게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김환유 학생의 작품이 야수파 화풍과 닮아 있다고 평가했다. 감정의 폭발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원색들을 도발적이고 직접적인 수법으로 구사하고 있고 강렬한 표현적 감응이 있다고 분석했다.

“진로요?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요.” 꿈을 묻는 질문에 김환유 학생은 자신의 그림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며 수줍어했다.

윤석우 교사는 “수많은 그룹전을 했지만 이처럼 의미 있고 기쁜 전시회는 없었다.”면서 “전시회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그리고 조각하고 준비했던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이번 전시회가 환유의 삶에도 큰 시작을 가져다주는 물줄기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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