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환교수, 정원박람회가 맺어준 인연, ‘먼나무’
[순천제일대/남도인터넷방송]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모든 이의 관심과 참여 속에 무사히 막을 내렷다. 세계 정원의 수려함과 함께 희망과 아름다움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던 박람회의 열기가 사라진 지금, 오히려 홀가분한 차림의 정원이 내게는 더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이 깃들여진 채 꾸며진 정원 곳곳을 어루만져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대견하다. 관람객들과의 어색한 첫 만남과 꽃샘추위도 잠시, 한여름 살인적인 태양 열기와 사나웠던 태풍의 시샘을 용케도 견뎌내고서 오색찬란한 꽃송이와 지리산도 부럽지 않을 단풍의 고운 자태를 미처 내보이기도 전에 아쉬운 막을 내렸던 정원박람회였다.
그래서인지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싶어서 오늘도 잠시 짬을 내어 비록 반쪽이지만 습지센터를 어루만지듯 거닐어 본다. 그리고 나무도감원 등지에 자리잡고서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사연 가득한 나무들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정원을 품은 기막힌 나무 이야기가 나직히 들려온다.
헬기로 아무리 들어 올리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나무가 막걸리 한 잔을 권해 받고서 거짓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던 박람회장에 처음 이식되었던 ‘지구정원 1번 나무’, 수령 300년의 생명의 은인 나무인 ‘기막힌 모과나무’, 조금만 늦었더라면 베어질 운명이었던 ‘5분 전 은행나무’ 베어질 운명에서 새 보금자리로 옮겨와 새 생명을 얻은 ‘위풍당당 팽나무’ 등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사연을 간직한 나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장사익 소리나무’ 느티나무 아래서 관람객의 마음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될 것이고, 전 세계를 무대로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조수미 도전나무’ 튤립나무, 세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는 그를 따르려는 후배들의 귀감이 될 ‘기성용 꿈나무’ 느릎나무,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있는 ‘히딩크 희망나무’ 호두나무 등 우리에게 귀감이 될 인물들이 손수 기증한 나무들에 우리들의 소박한 꿈도 영글어 갈 것이다.
특별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도 있다. 깊은 애정을 나누고 있는 비목나무와 산벚나무, 그리고 이 모습을 바로 옆에서 홀로 지켜보는 생강나무의 ‘숲 속의 연인목과 질투하는 생강나무’, 암수가 서로 다른 나무 3그루가 뿌리 부분에서 함께 자라고 잇는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근심 먹은 은행나무’, 순천만의 S자 모양을 닮아 눈길을 끄는 ‘S자 소나무’, 어린이 놀이시설로 활용 가능할만큼 누워있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아낌없이 주는 포플러 나무’, 원래 수령 50년의 팽나무, 수령 30년의 산벚나무, 수령 10년의 때죽나무가 한 곳에 사이 좋게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삼형제 연리목이었다.
태풍 볼라벤의 강한 바람이 산벚나무를 부러뜨려 지금은 팽나무와 때죽나무만 남게 된 사연의 ‘안타까운 형제 연리목’, 수령 30년의 명인 ‘홍쌍리 매화나무’, 다른 나무들처럼 쭉쭉 뻗지 못해 아프고 힘들었을텐데도 그 시절을 견뎌낸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의 수령 70년의 ‘사슴뿔 닮은 노각나무’등은 정원박람회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문득 나만의 인생목을 찾고 싶다. 나무도감원 한가운데에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파란잎과 붉은 열매가 조화스러운 아름드리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꽃이 없는 겨울에 꽃처럼 예쁜 열매를 가진 매력적인 나무이다. ‘먼나무’라고 한다. 겨울임에도 먼나무가 있는 자리에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량창고 같은 고마운 나무이고, 새들 역시 먼 곳으로 씨앗을 흐트려서 생명을 이어주며 보답을 한다. 마치 무서운 줄 모르고 교만이 넘쳐 흐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한줄기 빛 같은 청아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 하다. 그저 눈으로만 감상해도 예쁜 나무인데, 이렇게 우리 삶의 바른 길에 대한 참 의미까지 부여를 해줘서 그런지 더욱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먼나무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이 갖는 몇 가지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내게 내면과 외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존경스러운 이 땅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소통공간으로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면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어 내 인생이 닮고싶어하는 인생나무 한 그루를 덤으로 인연을 맺었다고 자랑하고 싶다. 인생나무 하나쯤 가져보시기를 권한다.